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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비극의 소비자가 되지 말라
by Caroline Stoltzfus2024-04-02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쟁, 무차별 총격 사건,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난 연예인, 정치극, 그리고 재판받는 첨단 기술 관련 억만장자들 등등. 오늘날 사회에는 끊임없이 뉴스가 쏟아지고, 그 모든 뉴스를 챙겨봐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보를 얻는다는 건 사회와 연결되었음을 확인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 및 역량을 강조하는 현대 문화의 미덕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물론 탄탄한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한 역사적이고 시사적 사건을 이해하는 건 가치가 있다. 창작자가 정직하게 이야기를 전할 때 정의가 구현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를 대변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뉴스를 통해서 각 세대가 이웃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재능과 자원을 사용하도록 영감을 받는다. 개인과 공동체로서 서로 배우고, 연결하고, 또 성장하는 데에 뉴스는 도움을 준다. 하지만 나쁜 뉴스에 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둠스크롤링(doomscrolling: 뉴스 스크롤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 더불어 쉬지 않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또 속보가 뜰 때마다 오는 알림을 강박적으로 클릭하는 게 과연 그리스도의 왕국을 잘 섬기는 데에 도움이 될까? 우리는 정말로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을 쏟는 걸까? 아니면 비극이 우리의 오락이 되었기 때문일까?


참여냐 도피냐?


솔직하게 말해서, 쉬지 않고 새로운 소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게 나와 이웃의 고통을 피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비난하는 게 바로 앞 모퉁이에 있는 노숙자를 돕는 거보다 훨씬 쉽다. 리얼 범죄 팟캐스트에 몇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가상 작업의 단조로움에 일시적인 만족감을 주는 아드레날린 해독제이다. 가족과 함께 가치 있는 대화를 나누는 대신 인스타그램 릴(Reel)이 제공하는 정치 드라마의 토끼 굴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마치 내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내 정신 건강과 내 공동체에 초래하는 피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정보 소비 행태는 주로 혼자 이뤄진다. 둠스크롤링은 굳이 육체를 갖춘 인간과 구원의 관계를 맺는 복잡하고 헌신적인 작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애초에 그리스도로 인해서 벗어나게 된 과거의 절망에 다시 빠지고,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그 절망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시청에서 행동으로


무력하게 멀리서 지켜보는 대신, 이사야 58:10-11에 귀를 기울이자. 하나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라고 하신다.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우리가 부름 받은 건 단지 배고픈 사람들을 돕자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포스팅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바램을 보며 답답하다며 고개를 흔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을 쏟아부음으로 궁핍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름받았다. 타인의 불행을 보다 보면 종종 두려움과 우울함이 생기지만,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때 주님은 모든 우울함을 밝게 하시고, 계속해서 인도하시며, 나아가서 우리의 소망까지 만족시켜 주신다. 우리가 만족을 찾아야 할 행동은 스크롤링이 아니라 진짜 봉사이다. 


하나님이 끊임없는 주시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흐름 이상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이야기로 초대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타인의 필요에 부응할 때 우리에게 정신적이고 영적인 복지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사야서의 이 구절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육체적 필요를 채우며 고통과 싸울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감정적, 영적 어려움을 만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주시고 우리가 기쁨의 증언을 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는 결코 뉴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취약계층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비극은 결코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극은 단지 인간의 죄가 모든 개인과 사회에게 어떤 끔찍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지 주변 고통에 대한 정보를 알라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그 고통 속으로 발을 디디라고 부르신다. 


성령의 열매를 고려하라


어떻게 해야 주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돕는 방식으로 정보를 접할 수 있을까? 일단 뉴스 소비가 우리 삶에 어떤 열매를 맺는지 생각해야 한다. 게시물을 스크롤하고, 기사를 읽고, 또 팟캐스트를 들을 때 당신 속에 일어나는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라. 거기에 성령의 열매라는 특징이 있는가(갈 5:22-26)?


• 이웃 사랑


• 상황을 뛰어넘는 기쁨


• 당신의 삶과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여부에 달린 평화


• 학습 과정에서 필요한 인내심


• 행동에서 드러나는 친절


• 의롭고 겸손한 마음에서 나오는 선함


• 봉사하는 데서 드러나는 신실함


• 마음과 몸의 한계를 향한 너그러움


•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에 대한 자제력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도리어 두려움, 불안, 죄로 특징지어진 반응이 주로 나타난다면, 당신의 뉴스 소비 습관은 재고되어야 한다. 보니 크리스티안은 Untrustworthy에서 단지 정보를 얻는 것보다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공부하는 자세를 갖는다는 건 지식을 추구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추구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이 모든 걸 다 잘 알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굳이 모든 헤드라인을 다 읽으려고 하지 말고, 적은 수의 기사를 깊이 신중하게 읽으라는 충고이다. 


TV 뉴스, 앱 알림, 일일 뉴스 요약 이메일의 단식부터 시작하라. 적어도 몇 주 동안 소음을 제거하고 이런 변화가 당신의 관계, 기분 및 불안 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라. 


그리고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으라. 일기를 쓰고, 기도하고, 또 이런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며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나눠 보라. 혹시라도 더 개선하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라. 이 모든 과정에서 주님께서 당신의 기도와 돕는 손길과 재정을 어떻게 바치라고 요구하시는지를 고민하라. 그런 다음에 뉴스 피드를 새롭게 구성하라. 당신은 이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새롭게 정보를 소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주제에 대한 온갖 정보를 다 얻는 게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오늘 터지는 뉴스와 관계없이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영원한 구원 스토리의 일부가 되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사역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다. 



원제: Tragedy Isn’t for Consumption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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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Caroline Stoltzfus

캐롤라인 스톨츠퍼스는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사 Homecoming Creative의 설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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